러닝의 즐거움에 빠져 한 걸음씩 거리를 늘려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성취감도 잠시, 어느 날부터 골반 안쪽에서 찌릿한 신호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쉬면 낫겠지" 싶어 2주를 쉬고 소소하게 다시 뛰어보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통증은 보란 듯이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결국 러너들 사이에서 유명한 남정형외과까지 찾아가 진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병원 문을 나서며 문득 서글픈 자책이 밀려왔습니다.
"왜 맘처럼 몸이 안 따라줄까? 나만 유독 달리기에 안 맞는 몸인 걸까?"
"저도 일주일 동안 걷지도 못했어요"
통증 때문에 러닝 모임에 제대로 나가지도 못하고 있던 어느 날, 크루 운영진께 운영진으로 함께해 보지 않겠냐는 과분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감사한 마음 한편으로 속이 쓰렸습니다.
"골반 통증으로 2주 쉬고 다시 혼자 소소히 달리기를 시작했는데요... 또 통증이 시작돼서 쉬고 있어요. 제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데 운영진은 어려울 것 같아요."
속상한 마음에 털어놓은 제게 돌아온 답장은 뜻밖이었습니다. 지금은 페이스를 척척 올리며 가볍게 달리는 운영진분도, 과거에 일주일 내내 걷지도 못해 뛰어가는 아이를 쫓아가지도 못할 정도로 심한 부상을 겪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크루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지금 주로 달리는 러너들 사이에서 가장 흔한 무릎 부상부터 발목, 골반 통증까지—오래 달린 고수 러너들도 예외 없이 몇 주, 몇 달씩 강제로 운동을 멈춰야 했던 부상의 시간을 한 번씩은 다 통과해 왔다는 점이었습니다.
부상은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자세로 계속 달릴 때 언젠가는 마주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벽이었습니다.
한마디의 피드백이 만든 기적
사실 러닝 자세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던 결정적인 경험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처음 모임에 나갔을 때, 한 선배 러너분이 제 달리기 모습을 유심히 보시더니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무릎을 앞으로 밀어주지 않고 위로 들어 올리기만 해서 추진력이 부족한 거예요. 그리고 착지할 때 발목이 안쪽으로 무너지는 내회전(과회내) 성향이 있으니 안정화를 한번 신어보세요."
반신반의하며 추천받은 안정화로 신발을 바꾸고 의식적으로 자세를 신경 썼더니, 신기하게도 내내 괴롭히던 발목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뒤 다시 만났을 때 "처음보다 자세가 훨씬 좋아졌다"는 칭찬을 들었을 때의 짜릿함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단 한 번의 정확한 원포인트 피드백이 러너의 통증을 없애고 성장을 이끈다는 것을 직접 체험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습니다.
유튜브를 보면 엘리트 선수 출신 코치님들이 기가 막히게 자세를 짚어주는 영상이 많지만, 1:1 레슨을 받자니 회당 5~10만 원을 훌쩍 넘는 비용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렇다고 매번 크루의 고수 러너를 찾아가 자세를 봐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누구나 주머니에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 카메라 하나로, 내 무릎과 골반 각도를 객관적으로 짚어줄 수는 없을까?"
그 작은 물음표가 바로 러닝 자세 분석 AI 서비스, 'RunSome'의 시작이었습니다.
서류 탈락, 그리고 손에 남은 '도전경력증명서'
머릿속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러너들의 부상 통계와 페인포인트를 정리하고, 멘토링 기관의 가이드를 받아가며 사업계획서를 써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당차게 '모두의 창업' 2기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습니다.

합격 통보 대신 제 손에 쥐어진 것은 한 장의 '도전경력증명서'였습니다.
처음엔 씁쓸했지만, 멘토링과 심사 과정을 거치며 아주 값진 교훈을 얻었습니다. 아무리 문제의식이 날카롭고 기획 의도가 좋아도, "실제로 동작하는 기술적 검증(PoC)과 데이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종이 위의 글자에 불과하다"는 냉정한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서류에서 떨어졌다고 해서 골반을 부여잡고 느꼈던 그 절실함과 러너들을 위한 기술에 대한 확신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획서에서 멈추지 않고, 직접 코드를 치기로 결심하다
"남이 만들어주길 기다리지 말자. 내 손으로 직접 기술부터 증명해 내면 된다."
사업계획서를 덮고 VS Code를 켰습니다. 스마트폰 측면 영상 속에서 러너의 관절 좌표를 찍어내기 위해 Python과 컴퓨터 비전 라이브러리인 MediaPipe, OpenCV를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최신 파이썬 버전 충돌부터 터미널 환경 변수 에러까지 온갖 트러블슈팅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마침내 영상 속 러너의 무릎 각도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영상으로 저장하는 첫 화면을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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